
한온시스템 지금이 기회인가?
전기차를 겨울에 타본 사람은 안다. 히터를 세게 켜는 순간 주행거리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그 불편함을. 이 문제를 가장 잘 푸는 회사가 한국에 있다. 세계 특허 9천여 건, 세계 시장 점유율 2위 — 한온시스템이다. 그런데 주가는 오랫동안 바닥을 기었다. 기술이 좋은 회사가 왜 이렇게 외면받았는지, 그리고 지금 무언가 달라지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 회사가 만드는 게 정확히 뭔가
자동차 안의 온도를 조절하는 모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에어컨, 히터, 배터리 냉각 시스템, 그리고 전기차의 핵심인 히트펌프까지. 현대차·기아는 물론 폭스바겐, 포드, GM 같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모두 이 회사 부품을 쓴다. 21개국에 51개 공장이 있고 직원만 2만2천 명이 넘는다.
전기차 시대에 열관리가 중요해진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차는 달리는 동안 배터리 에너지의 약 20%가 열로 날아간다. 이 열을 잘 다루면 주행거리가 늘고, 충전이 빨라지고, 화재 위험도 준다. 한온시스템은 이 히트펌프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지금까지 4세대까지 발전시켰다. 기아 EV3에 탑재된 4세대 히트펌프가 그 결과물이다.
그러면 왜 주가가 이렇게 안 좋았나
기술력은 세계 최고인데 주가는 지지부진했던 이유가 세 가지다.
첫째는 수익성이었다. 원자재 값이 오르고 공급망이 꼬이면서 영업이익률이 한때 2%대까지 떨어졌다. 10조 원어치를 팔아도 남는 게 200억 원 남짓이라는 뜻이다. 둘째는 전기차 캐즘이다. GM, 포드가 전기차 계획을 줄이면서 한온시스템이 쌓아둔 관련 자산에서 2천억 원 넘는 손실을 털어내야 했다. 셋째는 유상증자다. 빚을 갚으려고 새 주식을 대거 발행하다 보니 기존 주주 입장에서 주당 가치가 희석됐다. 실적이 좋아져도 주가가 빠르게 오르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2025년, 드디어 숫자가 바뀌었다
한국앤컴퍼니그룹에 편입된 이후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해온 효과가 2025년에 처음으로 숫자로 나타났다.
매출은 사상 처음 10조 원을 넘겼고(전년 대비 +8.9%), 영업이익은 2718억 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184% 급증했다. 3분기와 4분기 연속으로 영업이익률 3%대를 유지했는데, 이게 중요한 이유는 한때 2%대까지 무너졌던 마진이 방향을 바꿨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재무 부담도 줄었다. 유상증자로 들어온 돈의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쓰면서 부채비율이 246%에서 170% 미만으로 내려왔고, 이자 비용만 2026년에 약 500억 원 절감된다.
2026년: 진짜 증명의 해
회사 목표는 매출 11조 원, 영업이익률 5%다. 영업이익으로 따지면 약 4500억~5500억 원 수준이다. 2025년의 두 배 가까이다.
여기서 주목할 신사업이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A/S 부품 시장에 직접 뛰어든다. 차를 팔 때만 부품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차가 도로를 굴러다니는 동안 교체되는 부품 시장도 잡겠다는 거다. 현대모비스가 이 사업으로 20%대 영업이익률을 안정적으로 올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온시스템 입장에서는 꽤 매력적인 시장이다.
가장 신경 쓰이는 리스크: 현대위아
한온시스템 매출의 약 48%가 현대차그룹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위아가 열관리 시장에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기아 PV5에 통합 열관리 시스템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2030년부터는 외부 완성차 업체에도 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온시스템 입장에서 불편한 것은 현대위아가 현대차 내부 플랫폼과 긴밀하게 연동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같은 그룹이니 정보 공유에서 유리하다. 물론 기술 격차는 여전히 크다. 9천 건 이상의 특허와 20년 이상의 양산 경험은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최대 고객이 직접 경쟁자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장기 리스크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결론
한온시스템은 이제 막 생존 단계를 넘어 수익 단계에 들어섰다. 기술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재무 부담도 줄어들고 있다. 2026년이 이 회사가 진짜 턴어라운드를 증명하는 해다.
투자 관점에서 체크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분기별 영업이익률이 4%를 안정적으로 넘는지, 그리고 현대차그룹 외의 글로벌 수주가 늘고 있는지. 이 두 조건이 충족된다면 주가 재평가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늘어난 주식 수 때문에 단기 급등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지금이 나쁘지 않은 자리다.